여름, 2018

2년 전 두 달 정도 만났던 M에 대해 쓴다면 이 문장으로 시작하리라고 늘 생각했다.

“너는 그렇게 남자를 싫어하면서 어떻게 남자 앞에서 옷을 벗어?”

그 때 내 직업은 누드모델이었다. 파트타임이 아닌 전업으로, 햇수로는 5년이 넘어가는 프로 누드모델. 대학교와 문화센터, 동호회 화실과 작가의 작업실까지 봇짐을 지고 전국을 오가는 나날이었다. 레즈비언으로 완전히 정체화한 후 번개와 클럽, 원나잇 등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거침없이 누리던 때이기도 했다. 레즈이기에 망정이지, 이성애자가 이렇게 조심성 없이 굴었다면 진작에 성병에 걸리거나 임신을 했을거라고 생각하며.

M은 어플에서 만난 원나잇 상대였는데, 일이 없을 때면 요일마다 달리 불러대는 상대가 서넛은 되는 걸 몰랐던 그녀는 내게 연애를 걸었다. 지속적이고 독점적인 신뢰관계에 기대가 없던 나와 달리 M은 착실하게 연애 테크트리를 타려고 했다. 내 주말이 모두 제것인 양 굴었고, 급기야 가장 친한 친구라며 어릴 때 함께 자란 사촌오빠를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사촌에게 커밍아웃을 넘어 여자친구(?) 소개라니, 이건 또 새로운 전개군.

영등포에서 만난 M의 사촌오빠는 깔끔하게 천박한 남자였다. 통신사 대리점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나온 지 오래된 기종인 내 핸드폰을 대뜸 집어들더니 바꿀 때가 됐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누드모델에 대한 무례한 질문들로 끝까지 날 불쾌하게 했던 자리가 끝나고, M은 나에 대한 그의 감상을 전했다. “걔 시계 비싼 거 찼더라?”

물려받은 낡은 오메가였다. 내 손목을 흘금거렸을 그의 말을 전하는 M을 보며, 사실 그건 M의 생각이나 다름없다고 느꼈다. 내가 혐오한 것은 그의 성별이 아니라 그의(그리고 너의) 얄팍함이라고 굳이 설명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섹파 주제에 술을 마시면 영 팔힘을 못 써서 꼭 상위로 자위하듯 마무리하게 만들었던 술버릇을 싫어했고, 자라를 닮은 이목구비가 모아놓으면 묘하게 잘생겼던 얼굴과, 슬랙스가 잘 어울렸던, 굴곡없이 쭉 뻗은 다리를 좋아했다.

이 글을 읽는다면 네가 기분이 나빴으면 좋겠다. 연락 그만 해.

(2020.10.)

합정동 풀잎미용실

합정동에서 40년 간 미용실을 해 오신 풀잎미용실 권인숙 할머니. 이 동네 n년 살았는데 처음 가봤다. 촬영을 앞두고 드라이를 해야 했는데, 평소에 다니던 상수동 미용실(드라이 3만원)로 걸어가다가 풀잎미용실 불이 켜져 있길래 충동적으로 들어가 봤다. 낡았지만 정갈한 내부, 볕 드는 곳에 빼곡한 작은 화분과 선인장들. 아마도 가게 안쪽으로 연결된 살림집에 사시는 듯, “계세요?” 청하자 부스스 나오신다. 원래는 전화로 예약을 받고 그 때만 가게를 여신다고. 투블럭 반삭(에서 기르는 중)인 내 머리를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으신다. “아가씨는 미술 해요?” 하시고 마는.

원래 개성에서 태어나 전쟁통에 서울로 피난오셨고, 미용학교 졸업하고 안국동에서 10년, 합정동 이 가게에서 40년 미용을 하셨다고. 평생 한 일 하신 것으로 방송에 출연한 적도 있고, 어릴 때 이 동네 살며 항상 할머니에게 머리를 잘랐다 작가가 된 분이 낸 책에 인터뷰가 실리기도 하셨단다. 수줍어 하시면서도 이런 저런 자료들을 꺼내 보여주셨다.

안국동에서 미용실을 할 때는 지금 길상사 자리에 있는 요정에서 일하는 ‘기생들’ 머리를 만졌다고 했다.

“그때는 연애 실패하고 몸 버린 아가씨들이 기생이 됐어.” 하시길래,

“전 가끔 그런 언니들이 부러워요.” 했다.
“그러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 해야지. 부모님은 어디 계신고? 아가씨는 올해 몇 살이야?”
“올해 스물 아홉이에요. 부모님은 필운동 사세요. 경복궁 옆에.”
“그렇게 안 들어 보이는데. 서울 사시는데 왜 따로 살아?”
“엄마아빠랑 못 살겠어요.”
“이 동네도 많이 올랐지?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 둬. 저기 사는 언니는 몇 년 전에 7천으로 샀는데 지금 2억이 됐어.”
“제가 돈이 어딨어요..”

이런 얘기들. 싫지 않았다. 한참 내 말상대 해 주시고 옆머리까지 미니고데기로 펴 주시곤, 만원만 받으신다. “파마하러 올게요-” 했더니 힘들어서 안 하신다고.. 십 년만 젊어도 가발이랑 두상을 연구하고 싶다고 하시길래, 지금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살림의료생협의 반세기커플 프로젝트에서 본, 여성영화제 상역작 영화 생각이 났다. 다음에 한 번 보여드릴까?
황사 맞으며 머리 팔랑이고 촬영 잘 다녀 왔다. 오늘까지도 기분이 좋아서, 기록.

(2015년 2월 27일)

“여자를 가장 잘 아는 두 여자”

어제 전경린 <천사는 여기 머문다> 북토크 다녀 왔다.

문학동네는 왜 전경린 작가를 자꾸 ‘연애소설 잘 쓰는 작가’로 네이밍 하는건지 심히 불만이고, 40명만 미리 뽑아서 하는 작가와의 대화에 참가하는 독자들은 왜 자기 연애상담 따위를 작가에게 늘어놓는지 모르겠다. 변영주감독님이 ‘라디오 상담실 같아요’라고 한 코멘트, 현장에서는 재치있고 웃음 나오는 발언처럼 소화됐지만 나는 뼈가 있는 말이라고 느꼈고.

동거녀, 이혼녀, 불륜녀..이런 네이밍을 전경린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라벨링하는 것, 그것은 독해를 위한 한 스텝이어야 하지 최종적 평가여서는 안되는데.. 자기가 결혼은 하기 싫고 애는 낳고 싶은데 어쩌면 좋냐는 질문을 왜 작가님한테 하고 앉았냐…..

내게 전경린 소설은 여성의 ‘연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역설적 자유’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소설집 중 ‘폭우에 떨어진 낙과같은 여자들’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일견 부정적 표현이지만 나는 그 낙과에 감정이입한다. 낙과처럼 땅에 떨어졌기에 자유로운 여자들, 가부장-자본주의에서 ‘팔리기 위해’ ‘상품’으로 자기를 자발적으로 위치시키는 탐스러운 과일이 되고자 하는 여자들이 아니라, 자신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래서 이미 자신은 특정한 트랙에서 벗어났다고 여기는, ‘그런’ 여자들이 누리는, 역설적 자유.

말하자면 뻔한 얘기다. 착한 여자는 천당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는. 그렇지만 뻔한 구절이 내 삶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알라딘에서 하는 작가와의 대화 신청 페이지에서, 신청 이유를 나는 이렇게 적었다. “전경린 작가님과 변영주 감독님은 내게 용기를 주는 분들이다”고. 대화 중 변감독님이 “나는 한 가지를 선택할 때 다른 것들에 대한 욕망은 사라진다”고 하신 것도 그렇고, 요즈음 내게 용기와 확신을 주는 구절들이다..

암튼 다음은 기억나는대로 끄적인 전경린 작가의 코멘트 들. 워딩은 정확하지 않고, 그냥 내가 재구성한 것이니 틀릴 수도 있음.

(전경린이 소설에서 연애를 주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지금 한국의 2-30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하게 다가오는게 연애인 것 같이 얘기되지만, 사실 한국사회에서 자유연애라는게 사회적으로 용인된 것은 불과 몇십년이 되지 않았지요. 아직도 어떤 나라에서는 가족이 허락하지 않는 연애를 했던 여성을 지구끝까지 쫓아가서 살해하는 일이 일어나고. 그런 의미에서 연애는 개인의 역량이 모두 발휘되는 장인 동시에, 사회가 허용하는 관계의(?) 범위, 그 상상력이 어디까지인지를 드러내는 장이기도 합니다.”

(한 독자가 <백합의 벼랑길>마지막 부분을 낭독한 후)
“그 부분은 저도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사람들은 슬픔이 내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기쁨이야말로 개인의 가장 은밀한 부분, 공유하기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맥도날드 멜랑콜리아>등에서 마산, 진해의 풍경이 세밀히 묘사되었다는 질문)
“변영주 감독님의 <화차>에도 마창진(?)이 풍경이 잘 드러나서 주민들이 영화를 보며 즐거워했다고 들었어요. 요 즈음 저는 한 작가가 어떤 지역에서 거주하고 생활할 때, 작품에서 그것이 드러나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2014년 8월 14일)

[인터뷰] 접속유지

패널소개

정규리: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다. 소설가의 꿈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갔으나 여자만 줄창 만나다가 여성학과에 진학, 퀴어 이론을 공부하고 번역까지 하게 되었다.

‘성적/노동’에 대한 석사 논문을 쓰려고 누드모델회사에 잠입했다가 적성을 깨닫고 생업으로 삼은 지 1년 반이 되었다. 장래 희망은 레즈비언을 위한 성적 콘텐츠(포르노/에로잡지/야설)등을 생산하는 것. [가가 페미니즘]을 공역했다.

밥벌이 vs 작업의 갈등

정규리 (여성학): (밥벌이와 작업을 일치시킨 것 아니냐는 질문에) 네가 하고 싶은 게 포르노면, 지금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친구들이 묻기도 한다. 나는 미술학원, 문화센터, 대학에서 그림 모델을 한다. 실은 창작보다는 여성주의 포르노, 레즈비언 포르노를 통한 여성운동을 하고 싶다.

그런데 돈을 벌려면 좀 야하고, 여성을 대상화하는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 최근에 출연한 영화에서 내 역할은 “창녀”였다. 여자친구랑 헤어지기 위해서, “창녀” 불러서 여자친구 옆에서 섹스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였다. 그걸 전혀 모르고 현장에 갔기 때문에 멘붕이 왔다.

그래서 현장 상황을 아카이빙하는 것도 운동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애써 하면서,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http://slownews.kr/37208

정규리: 내가 에디터로 참여하고 있는 [젖은잡지]는 모델 정두리 씨가 사비로 제작하는 잡지인데, 생각보다 굉장히 잘 팔린다. 이 잡지를 통해 나도 처음으로 독립출판을 경험했다.

그전에는 [가가 페미니즘]을 친구들과 함께 공역해 이매진 출판사를 통해 낸 적이 있는데, 화제가 되어서 초반에는 조금 팔렸다. 근데, 그것보다 [젖은잡지]가 짧은 기간 동안 더 많이 팔렸다.

사실 요즘은 메이저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책을 혼자 만들어볼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트위터를 통해 책을 팔려면 그만큼 공을 들여야 한다. 사진도 계속 올리고, 사생활도 노출하면서. 이 씬에서 어떤 인물로 자리매김하는 것 자체가 독립출판의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니까.

내가 궁극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레즈비언 포르노는 수익성은 없겠지만, 영화를 만드는 친구들이나, 여성주의 영상 작업을 하는 친구들과 여성운동을 함께한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나 혼자 레즈비언 포르노 만들어 돈을 벌 거야!’

이런 게 아니라 동의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같이 운동을 해나가고 싶다. 이 좌담회에 온 것 자체도 그런 과정이다.

http://slownews.kr/37210

런던 퀴어여성 전용 BDSM 파티 ‘스웻’에 가다

나는 BDSM(Bondage Discipline Sadism Masochism, 사람들의 성적 기호 중에서 지배와 속박, 가학과 피학 성향 등을 통칭) 성향자이며, 페미니스트다. 하지만 어떤 이들이 보기에는 내가 가진 성적 기호 때문에 나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할 수 없으며 심지어 여성혐오자로 불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섹스 안팎에서 가학/피학 행위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묘사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억압을 승인하고 재생산하는 것일까?

지금 나는 ‘남성’과 섹스도, 플레이도 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고 있다. 내가 실천하는 여성 간의 BDSM 섹스는 이성애 플레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가? 그렇다면 여성 간의 플레이는 반(反)페미니즘적이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잘 모르겠다.

내 짧은 지식으로는 나의 젠더 표현, 레즈비언 정체성, BDSM 성향 등의 ‘원인’이나 그 정치적 효과를 정의하거나 명확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 연달아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과 논쟁에 대해 대답하기 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저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 호주 브리즈번에서 활동하는 퀴어 포토그래퍼 Tristan Peter가 호주 잡지에 싣기 위해 작업했던 돔&섭 컨셉 화보의 일부. (©포토그래퍼: 트리스탄 피터, 모델: 칠월, 소이)

한국에서 레즈비언 BDSM 파트너를 찾는다는 건

내가 에세머(smer), 정확히는 섭 스팽키(성행위를 할 때 엉덩이나 허벅지 등을 맞는 것을 즐기는 사람)로 정체화한 시기는 언제인지 정확하지 않다. 여성과 섹스를 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거친’ 섹스를 좋아하는 취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 나아가 머리채를 잡히거나, 수갑 등으로 결박당하거나, 엉덩이를 맞는 것을 즐긴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사실 이 정도 수위는 에세머들이 말하는 ‘바닐라’(BDSM 성향이 없는 일반인)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섹스 상대에게 위의 행위들을 요구하면 거부감을 가지곤 했기 때문에, 차라리 스스로를 에세머로 규정하고서 파트너를 찾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레즈비언이 (섹스를 동반한) 플레이 파트너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엔 크게 두 개의 BDSM 성향자 웹사이트가 있는데, 내가 원하는 부치-스팽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가끔 ‘구인’ 글을 올리면 쪽지함은 돔/섭 성향을 가리지 않고 남자들의 플러팅으로 가득 찼다.

자신의 여성 섭 혹은 돔과 내가 플레이하는 것을 ‘관전’하게 해달라는 제안이 여럿이었고, 그렇게 해준다면 금전적으로 보상하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몇 번의 불쾌한 경험을 한 끝에, 나는 한국에서 레즈비언 BDSM 파트너를 찾는 일을 잠정적으로 포기하게 되었다.

퀴어여성 전용 BDSM 파티 ‘스웻’ 초청장 받기

지난 2016년 5월, 나는 서유럽 퀴어-BDSM-페미니스트 투어를 다녀왔다. 그런 여행상품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직접 유럽의 퀴어 퍼레이드와 BDSM 워크샵, 퀴어 전용 술집과 서점들을 알아보고 날짜를 맞추어 일정을 계획했다. 브뤼셀 퀴어퍼레이드, 암스테르담의 BDSM 워크샵과 파티, 베를린, 런던, 파리, 바르셀로나의 레즈비언 펍과 페미니스트&퀴어 서점들을 방문했다. 

▶ 2016년 벨기에 퀴어퍼레이드 현장  ©칠월

여행을 계획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벤트는 런던의 퀴어여성 전용 BDSM 파티 SWEAT(이하 ‘스웻’)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여성전용 ‘찜방’, 게다가 SM까지 할 수 있는 사우나라니, 딴 나라 얘기를 책으로만 읽다가 실제로 가게 되었다는 것만 해도 꿈만 같은 일이었다.

SWEAT(sweat-london.co.uk)에 대해 알게 된 건, 런던 페티쉬 씬(londonfetishscene.com) 사이트를 통해서였다. 여행 전에 BDSM/페티쉬 사이트인 펫라이프닷컴(fetlife.com)에서 도시별로 내가 머무는 날짜에 열리는 행사를 검색했는데, 런던에서 스웻을 한다는 걸 알고는 외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 런던 페티쉬 씬 홈페이지 (출처: londonfetishscene.com)

스웻은 세 명의 퀴어여성 오거나이저가 운영하며 여성퀴어를 대상으로 열리는 비정기 행사다. 미리 등록된 메일링리스트에 초대장이 돌고, 우리로 치면 인터파크 같은 사이트에서 예매를 한 후 자세한 장소를 안내받는다. 나는 행사를 알게 된 후 메일을 보내서 리스트에 초대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가입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에 답해야 했다.

“당신을 스웻 메일링리스트에 추가하고 다가오는 행사 알림 메일을 보내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 검증 절차를 거칩니다. 이것은 우리와 당신을 보호하는 조치이므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 절차는 가능한 빨리 처리됩니다.

-스웻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이전에 비슷한 행사(예를 들어 섹스와 BDSM을 위한 공간)에 참여한 경험이 있나요? 반드시 경험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음!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질문. 스웻은 여성 혹은 트랜스* 스펙트럼으로 정체화하는 이들을 위한 섹스 및 BDSM 플레이 공간입니다. 당신이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해 주세요.”

답장을 보냈고, 곧 초대장을 받았다. 주의 사항이 포함된, 엄청 길고 딱딱한 메일이었다. 대문자 MUST(~해야 한다)가 난무했는데, 의상이나 에티켓 등을 안내하는 이 메일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 입장료는 15파운드에 예약 수수료 2파운드를 더해 약 3만원.

오리엔테이션과 대화, 합의의 과정을 거치고

행사는 저녁 8시부터였는데, 처음 오는 사람은 7시 30분까지 와서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라고 했다. 나는 오전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와 목욕재개하고 란제리와 가죽바지를 입고 지하철을 탔다. 엄청 외곽에 있는 개인집일줄 알았는데, 킹스크로스 역에서 지하철로 고작 10분. 장소는 놀랍게도 시내의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아마도) 게이 찜방이었다. 입장하면서 라커 키와 타월을 받았다. 쿠키와 홍차가 무료로 제공된다.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술이나 마약에 취해있지 않으며 룰을 지키겠다는 확인서에 서명을 하고 장소를 안내받았다. 한쪽에는 사우나, 샤워실이 있었고, 가운데는 공개 플레이를 위한 넓은 침대 하나, 문을 잠글 수 있는 작은 방들이 여럿 있었다. 공중그네의자가 천정에 매달려 있는 방 등 방마다 테마가 다양했다. 프라이빗 섹스를 위해 준비된 이런 방들을 ‘다크 룸’이라고 부른다. 

▶ 암스테르담 BDSM 주간의 본디지 워크샵 모습  ©칠월

8시가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총 30명 정도였는데, 다양한 체형과 다양한 성별 표현, 다양한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라틴계나 아프리카계 등은 없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백인이었다.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복장은 자유, 대부분 비키니나 란제리를 입었거나 팬티만 입은 상체 노출. 영화 <용 문신을 한 소녀>(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데이빗 핀처, 2011)의 리스베트 같은 옷을 입은 언니도 있었고, 모자부터 구두까지 완벽한 경찰 복장을 한 언니도 있었다. 피어싱과 타투를 한 언니들이 참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팸들은 수영복이나 란제리를 입고 아무것도 손에 든 것이 없는데, 부치들은 거의 복장을 갖춰 입은 데다 장비가방(?)을 철컹거리며 들고 다닌다는 것. 안에는 딜도나 각종 토이가 들어 있는 듯. 플레이를 하기 전에 커다란 가방을 뙇 내려놓고 채찍, 패들, 회초리, 까칠장갑 등 토이들을 하나하나 꺼내 소중하게 펼쳐놓는 것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참가자들이 모두 모여 10분 정도 아이스브레이킹을 했다. 2분마다 상대를 바꿔 가며 대화를 하는 거였다. 아이스브레이킹 후에는 자유시간인데, 상상했던 것처럼 바로 난교가 펼쳐지는 건 아니었다.(야동을 너무 봤나 보다) 다들 사우나와 스파에 몰려가서 수다를 떨었다. 스파에 자리가 없었다. 대화를 하면서 취향이 맞는 상대를 찾으면 함께 샤워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역시 섹스와 BDSM 플레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취향, 플레이 수위의 조율과 이에 대한 명시적 합의를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플레이를, 안심하고 할 수 있다는 것

몇 명과 대화를 나누다 사우나 밖에서 찰싹찰싹 소리가 들리길래 나가봤더니, 스팽킹 플레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스팽커의 손길은 능숙했다. 스팽키를 무릎 위로 엎드리게 하고, 손바닥으로 양쪽 엉덩이를 번갈아 때렸다. 손바닥이 엉덩이에 닿는 순간 절도 있게 멈추는 찰진 스냅이었다. 강도가 점점 높아지는가 싶다가 어느 순간 약하게 때리기도 하고, 중간 중간 스팽키에게 괜찮냐고 계속해서 확인하곤 했다. 도구를 바꿔가며 엉덩이를 때리다가 둘이 무슨 대화를 하더니, 스팽키가 일어나 무릎을 꿇고 서서 양 손으로 벽을 짚었다.

스팽커는 여러 갈래의 가죽 채찍을 꺼내 들었고, 이번엔 엉덩이가 아니라 등을 때리기 시작했다. 스팽키의 온 몸이 꿈틀거렸다. 관전을 하다 보니 나도 흥분해서 스팽커에게 플레이를 요청했다. 약 5분 정도(짧은 것 같지만 굉장히 긴 시간이다) 플레이를 한 후 이만하면 됐다고 하고 마쳤다.

▶ 스웻 워크샵에서의 스팽킹 플레이의 흔적  ©칠월

아직 경험이 없는 본디지 플레이(밧줄이나 사슬로 몸을 묶는 것)도 해 보고 싶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스팽킹으로도 충분했다. 숙달된 마스터의 손길은 그 자체로 너무나 섹시했다. 플레이가 끝난 후 우리는 서로에게 감사하며 포옹을 나눴다. 여성퀴어 전문가와, 정확히 내가 원하는 플레이를, 안심하고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요원한 일이겠지….

시간이 지나면서 섹스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다크 룸은 만실이었고, 중앙 침대가 비좁아졌다. 경찰 옷을 입은 언니는 벽에 서서 조교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더 보고 싶은 장면이 많았지만 지하철 시간 때문에 10시 반쯤 일어나야 했다.(행사는 자정까지 열렸다) 몇몇 사람과 펫라이프닷컴 친구를 맺고, 샤워를 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에 돌아오며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엉덩이가 기분 좋게 아렸다. 여행 내내, 나는 붉은 멍이 차차 보라색으로, 노란색으로, 살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그 날을 추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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