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두 달 정도 만났던 M에 대해 쓴다면 이 문장으로 시작하리라고 늘 생각했다.
“너는 그렇게 남자를 싫어하면서 어떻게 남자 앞에서 옷을 벗어?”
그 때 내 직업은 누드모델이었다. 파트타임이 아닌 전업으로, 햇수로는 5년이 넘어가는 프로 누드모델. 대학교와 문화센터, 동호회 화실과 작가의 작업실까지 봇짐을 지고 전국을 오가는 나날이었다. 레즈비언으로 완전히 정체화한 후 번개와 클럽, 원나잇 등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거침없이 누리던 때이기도 했다. 레즈이기에 망정이지, 이성애자가 이렇게 조심성 없이 굴었다면 진작에 성병에 걸리거나 임신을 했을거라고 생각하며.
M은 어플에서 만난 원나잇 상대였는데, 일이 없을 때면 요일마다 달리 불러대는 상대가 서넛은 되는 걸 몰랐던 그녀는 내게 연애를 걸었다. 지속적이고 독점적인 신뢰관계에 기대가 없던 나와 달리 M은 착실하게 연애 테크트리를 타려고 했다. 내 주말이 모두 제것인 양 굴었고, 급기야 가장 친한 친구라며 어릴 때 함께 자란 사촌오빠를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사촌에게 커밍아웃을 넘어 여자친구(?) 소개라니, 이건 또 새로운 전개군.
영등포에서 만난 M의 사촌오빠는 깔끔하게 천박한 남자였다. 통신사 대리점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나온 지 오래된 기종인 내 핸드폰을 대뜸 집어들더니 바꿀 때가 됐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누드모델에 대한 무례한 질문들로 끝까지 날 불쾌하게 했던 자리가 끝나고, M은 나에 대한 그의 감상을 전했다. “걔 시계 비싼 거 찼더라?”
물려받은 낡은 오메가였다. 내 손목을 흘금거렸을 그의 말을 전하는 M을 보며, 사실 그건 M의 생각이나 다름없다고 느꼈다. 내가 혐오한 것은 그의 성별이 아니라 그의(그리고 너의) 얄팍함이라고 굳이 설명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섹파 주제에 술을 마시면 영 팔힘을 못 써서 꼭 상위로 자위하듯 마무리하게 만들었던 술버릇을 싫어했고, 자라를 닮은 이목구비가 모아놓으면 묘하게 잘생겼던 얼굴과, 슬랙스가 잘 어울렸던, 굴곡없이 쭉 뻗은 다리를 좋아했다.
이 글을 읽는다면 네가 기분이 나빴으면 좋겠다. 연락 그만 해.
(20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