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동에서 40년 간 미용실을 해 오신 풀잎미용실 권인숙 할머니. 이 동네 n년 살았는데 처음 가봤다. 촬영을 앞두고 드라이를 해야 했는데, 평소에 다니던 상수동 미용실(드라이 3만원)로 걸어가다가 풀잎미용실 불이 켜져 있길래 충동적으로 들어가 봤다. 낡았지만 정갈한 내부, 볕 드는 곳에 빼곡한 작은 화분과 선인장들. 아마도 가게 안쪽으로 연결된 살림집에 사시는 듯, “계세요?” 청하자 부스스 나오신다. 원래는 전화로 예약을 받고 그 때만 가게를 여신다고. 투블럭 반삭(에서 기르는 중)인 내 머리를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으신다. “아가씨는 미술 해요?” 하시고 마는.
원래 개성에서 태어나 전쟁통에 서울로 피난오셨고, 미용학교 졸업하고 안국동에서 10년, 합정동 이 가게에서 40년 미용을 하셨다고. 평생 한 일 하신 것으로 방송에 출연한 적도 있고, 어릴 때 이 동네 살며 항상 할머니에게 머리를 잘랐다 작가가 된 분이 낸 책에 인터뷰가 실리기도 하셨단다. 수줍어 하시면서도 이런 저런 자료들을 꺼내 보여주셨다.
안국동에서 미용실을 할 때는 지금 길상사 자리에 있는 요정에서 일하는 ‘기생들’ 머리를 만졌다고 했다.
“그때는 연애 실패하고 몸 버린 아가씨들이 기생이 됐어.” 하시길래,
“전 가끔 그런 언니들이 부러워요.” 했다.
“그러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 해야지. 부모님은 어디 계신고? 아가씨는 올해 몇 살이야?”
“올해 스물 아홉이에요. 부모님은 필운동 사세요. 경복궁 옆에.”
“그렇게 안 들어 보이는데. 서울 사시는데 왜 따로 살아?”
“엄마아빠랑 못 살겠어요.”
“이 동네도 많이 올랐지?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 둬. 저기 사는 언니는 몇 년 전에 7천으로 샀는데 지금 2억이 됐어.”
“제가 돈이 어딨어요..”
이런 얘기들. 싫지 않았다. 한참 내 말상대 해 주시고 옆머리까지 미니고데기로 펴 주시곤, 만원만 받으신다. “파마하러 올게요-” 했더니 힘들어서 안 하신다고.. 십 년만 젊어도 가발이랑 두상을 연구하고 싶다고 하시길래, 지금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살림의료생협의 반세기커플 프로젝트에서 본, 여성영화제 상역작 영화 생각이 났다. 다음에 한 번 보여드릴까?
황사 맞으며 머리 팔랑이고 촬영 잘 다녀 왔다. 오늘까지도 기분이 좋아서, 기록.
(2015년 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