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접속유지

패널소개

정규리: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다. 소설가의 꿈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갔으나 여자만 줄창 만나다가 여성학과에 진학, 퀴어 이론을 공부하고 번역까지 하게 되었다.

‘성적/노동’에 대한 석사 논문을 쓰려고 누드모델회사에 잠입했다가 적성을 깨닫고 생업으로 삼은 지 1년 반이 되었다. 장래 희망은 레즈비언을 위한 성적 콘텐츠(포르노/에로잡지/야설)등을 생산하는 것. [가가 페미니즘]을 공역했다.

밥벌이 vs 작업의 갈등

정규리 (여성학): (밥벌이와 작업을 일치시킨 것 아니냐는 질문에) 네가 하고 싶은 게 포르노면, 지금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친구들이 묻기도 한다. 나는 미술학원, 문화센터, 대학에서 그림 모델을 한다. 실은 창작보다는 여성주의 포르노, 레즈비언 포르노를 통한 여성운동을 하고 싶다.

그런데 돈을 벌려면 좀 야하고, 여성을 대상화하는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 최근에 출연한 영화에서 내 역할은 “창녀”였다. 여자친구랑 헤어지기 위해서, “창녀” 불러서 여자친구 옆에서 섹스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였다. 그걸 전혀 모르고 현장에 갔기 때문에 멘붕이 왔다.

그래서 현장 상황을 아카이빙하는 것도 운동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애써 하면서,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http://slownews.kr/37208

정규리: 내가 에디터로 참여하고 있는 [젖은잡지]는 모델 정두리 씨가 사비로 제작하는 잡지인데, 생각보다 굉장히 잘 팔린다. 이 잡지를 통해 나도 처음으로 독립출판을 경험했다.

그전에는 [가가 페미니즘]을 친구들과 함께 공역해 이매진 출판사를 통해 낸 적이 있는데, 화제가 되어서 초반에는 조금 팔렸다. 근데, 그것보다 [젖은잡지]가 짧은 기간 동안 더 많이 팔렸다.

사실 요즘은 메이저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책을 혼자 만들어볼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트위터를 통해 책을 팔려면 그만큼 공을 들여야 한다. 사진도 계속 올리고, 사생활도 노출하면서. 이 씬에서 어떤 인물로 자리매김하는 것 자체가 독립출판의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니까.

내가 궁극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레즈비언 포르노는 수익성은 없겠지만, 영화를 만드는 친구들이나, 여성주의 영상 작업을 하는 친구들과 여성운동을 함께한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나 혼자 레즈비언 포르노 만들어 돈을 벌 거야!’

이런 게 아니라 동의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같이 운동을 해나가고 싶다. 이 좌담회에 온 것 자체도 그런 과정이다.

http://slownews.kr/37210

런던 퀴어여성 전용 BDSM 파티 ‘스웻’에 가다

나는 BDSM(Bondage Discipline Sadism Masochism, 사람들의 성적 기호 중에서 지배와 속박, 가학과 피학 성향 등을 통칭) 성향자이며, 페미니스트다. 하지만 어떤 이들이 보기에는 내가 가진 성적 기호 때문에 나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할 수 없으며 심지어 여성혐오자로 불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섹스 안팎에서 가학/피학 행위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묘사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억압을 승인하고 재생산하는 것일까?

지금 나는 ‘남성’과 섹스도, 플레이도 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고 있다. 내가 실천하는 여성 간의 BDSM 섹스는 이성애 플레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가? 그렇다면 여성 간의 플레이는 반(反)페미니즘적이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잘 모르겠다.

내 짧은 지식으로는 나의 젠더 표현, 레즈비언 정체성, BDSM 성향 등의 ‘원인’이나 그 정치적 효과를 정의하거나 명확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 연달아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과 논쟁에 대해 대답하기 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저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 호주 브리즈번에서 활동하는 퀴어 포토그래퍼 Tristan Peter가 호주 잡지에 싣기 위해 작업했던 돔&섭 컨셉 화보의 일부. (©포토그래퍼: 트리스탄 피터, 모델: 칠월, 소이)

한국에서 레즈비언 BDSM 파트너를 찾는다는 건

내가 에세머(smer), 정확히는 섭 스팽키(성행위를 할 때 엉덩이나 허벅지 등을 맞는 것을 즐기는 사람)로 정체화한 시기는 언제인지 정확하지 않다. 여성과 섹스를 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거친’ 섹스를 좋아하는 취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 나아가 머리채를 잡히거나, 수갑 등으로 결박당하거나, 엉덩이를 맞는 것을 즐긴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사실 이 정도 수위는 에세머들이 말하는 ‘바닐라’(BDSM 성향이 없는 일반인)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섹스 상대에게 위의 행위들을 요구하면 거부감을 가지곤 했기 때문에, 차라리 스스로를 에세머로 규정하고서 파트너를 찾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레즈비언이 (섹스를 동반한) 플레이 파트너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엔 크게 두 개의 BDSM 성향자 웹사이트가 있는데, 내가 원하는 부치-스팽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가끔 ‘구인’ 글을 올리면 쪽지함은 돔/섭 성향을 가리지 않고 남자들의 플러팅으로 가득 찼다.

자신의 여성 섭 혹은 돔과 내가 플레이하는 것을 ‘관전’하게 해달라는 제안이 여럿이었고, 그렇게 해준다면 금전적으로 보상하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몇 번의 불쾌한 경험을 한 끝에, 나는 한국에서 레즈비언 BDSM 파트너를 찾는 일을 잠정적으로 포기하게 되었다.

퀴어여성 전용 BDSM 파티 ‘스웻’ 초청장 받기

지난 2016년 5월, 나는 서유럽 퀴어-BDSM-페미니스트 투어를 다녀왔다. 그런 여행상품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직접 유럽의 퀴어 퍼레이드와 BDSM 워크샵, 퀴어 전용 술집과 서점들을 알아보고 날짜를 맞추어 일정을 계획했다. 브뤼셀 퀴어퍼레이드, 암스테르담의 BDSM 워크샵과 파티, 베를린, 런던, 파리, 바르셀로나의 레즈비언 펍과 페미니스트&퀴어 서점들을 방문했다. 

▶ 2016년 벨기에 퀴어퍼레이드 현장  ©칠월

여행을 계획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벤트는 런던의 퀴어여성 전용 BDSM 파티 SWEAT(이하 ‘스웻’)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여성전용 ‘찜방’, 게다가 SM까지 할 수 있는 사우나라니, 딴 나라 얘기를 책으로만 읽다가 실제로 가게 되었다는 것만 해도 꿈만 같은 일이었다.

SWEAT(sweat-london.co.uk)에 대해 알게 된 건, 런던 페티쉬 씬(londonfetishscene.com) 사이트를 통해서였다. 여행 전에 BDSM/페티쉬 사이트인 펫라이프닷컴(fetlife.com)에서 도시별로 내가 머무는 날짜에 열리는 행사를 검색했는데, 런던에서 스웻을 한다는 걸 알고는 외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 런던 페티쉬 씬 홈페이지 (출처: londonfetishscene.com)

스웻은 세 명의 퀴어여성 오거나이저가 운영하며 여성퀴어를 대상으로 열리는 비정기 행사다. 미리 등록된 메일링리스트에 초대장이 돌고, 우리로 치면 인터파크 같은 사이트에서 예매를 한 후 자세한 장소를 안내받는다. 나는 행사를 알게 된 후 메일을 보내서 리스트에 초대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가입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에 답해야 했다.

“당신을 스웻 메일링리스트에 추가하고 다가오는 행사 알림 메일을 보내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 검증 절차를 거칩니다. 이것은 우리와 당신을 보호하는 조치이므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 절차는 가능한 빨리 처리됩니다.

-스웻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이전에 비슷한 행사(예를 들어 섹스와 BDSM을 위한 공간)에 참여한 경험이 있나요? 반드시 경험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음!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질문. 스웻은 여성 혹은 트랜스* 스펙트럼으로 정체화하는 이들을 위한 섹스 및 BDSM 플레이 공간입니다. 당신이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해 주세요.”

답장을 보냈고, 곧 초대장을 받았다. 주의 사항이 포함된, 엄청 길고 딱딱한 메일이었다. 대문자 MUST(~해야 한다)가 난무했는데, 의상이나 에티켓 등을 안내하는 이 메일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 입장료는 15파운드에 예약 수수료 2파운드를 더해 약 3만원.

오리엔테이션과 대화, 합의의 과정을 거치고

행사는 저녁 8시부터였는데, 처음 오는 사람은 7시 30분까지 와서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라고 했다. 나는 오전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와 목욕재개하고 란제리와 가죽바지를 입고 지하철을 탔다. 엄청 외곽에 있는 개인집일줄 알았는데, 킹스크로스 역에서 지하철로 고작 10분. 장소는 놀랍게도 시내의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아마도) 게이 찜방이었다. 입장하면서 라커 키와 타월을 받았다. 쿠키와 홍차가 무료로 제공된다.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술이나 마약에 취해있지 않으며 룰을 지키겠다는 확인서에 서명을 하고 장소를 안내받았다. 한쪽에는 사우나, 샤워실이 있었고, 가운데는 공개 플레이를 위한 넓은 침대 하나, 문을 잠글 수 있는 작은 방들이 여럿 있었다. 공중그네의자가 천정에 매달려 있는 방 등 방마다 테마가 다양했다. 프라이빗 섹스를 위해 준비된 이런 방들을 ‘다크 룸’이라고 부른다. 

▶ 암스테르담 BDSM 주간의 본디지 워크샵 모습  ©칠월

8시가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총 30명 정도였는데, 다양한 체형과 다양한 성별 표현, 다양한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라틴계나 아프리카계 등은 없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백인이었다.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복장은 자유, 대부분 비키니나 란제리를 입었거나 팬티만 입은 상체 노출. 영화 <용 문신을 한 소녀>(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데이빗 핀처, 2011)의 리스베트 같은 옷을 입은 언니도 있었고, 모자부터 구두까지 완벽한 경찰 복장을 한 언니도 있었다. 피어싱과 타투를 한 언니들이 참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팸들은 수영복이나 란제리를 입고 아무것도 손에 든 것이 없는데, 부치들은 거의 복장을 갖춰 입은 데다 장비가방(?)을 철컹거리며 들고 다닌다는 것. 안에는 딜도나 각종 토이가 들어 있는 듯. 플레이를 하기 전에 커다란 가방을 뙇 내려놓고 채찍, 패들, 회초리, 까칠장갑 등 토이들을 하나하나 꺼내 소중하게 펼쳐놓는 것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참가자들이 모두 모여 10분 정도 아이스브레이킹을 했다. 2분마다 상대를 바꿔 가며 대화를 하는 거였다. 아이스브레이킹 후에는 자유시간인데, 상상했던 것처럼 바로 난교가 펼쳐지는 건 아니었다.(야동을 너무 봤나 보다) 다들 사우나와 스파에 몰려가서 수다를 떨었다. 스파에 자리가 없었다. 대화를 하면서 취향이 맞는 상대를 찾으면 함께 샤워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역시 섹스와 BDSM 플레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취향, 플레이 수위의 조율과 이에 대한 명시적 합의를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플레이를, 안심하고 할 수 있다는 것

몇 명과 대화를 나누다 사우나 밖에서 찰싹찰싹 소리가 들리길래 나가봤더니, 스팽킹 플레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스팽커의 손길은 능숙했다. 스팽키를 무릎 위로 엎드리게 하고, 손바닥으로 양쪽 엉덩이를 번갈아 때렸다. 손바닥이 엉덩이에 닿는 순간 절도 있게 멈추는 찰진 스냅이었다. 강도가 점점 높아지는가 싶다가 어느 순간 약하게 때리기도 하고, 중간 중간 스팽키에게 괜찮냐고 계속해서 확인하곤 했다. 도구를 바꿔가며 엉덩이를 때리다가 둘이 무슨 대화를 하더니, 스팽키가 일어나 무릎을 꿇고 서서 양 손으로 벽을 짚었다.

스팽커는 여러 갈래의 가죽 채찍을 꺼내 들었고, 이번엔 엉덩이가 아니라 등을 때리기 시작했다. 스팽키의 온 몸이 꿈틀거렸다. 관전을 하다 보니 나도 흥분해서 스팽커에게 플레이를 요청했다. 약 5분 정도(짧은 것 같지만 굉장히 긴 시간이다) 플레이를 한 후 이만하면 됐다고 하고 마쳤다.

▶ 스웻 워크샵에서의 스팽킹 플레이의 흔적  ©칠월

아직 경험이 없는 본디지 플레이(밧줄이나 사슬로 몸을 묶는 것)도 해 보고 싶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스팽킹으로도 충분했다. 숙달된 마스터의 손길은 그 자체로 너무나 섹시했다. 플레이가 끝난 후 우리는 서로에게 감사하며 포옹을 나눴다. 여성퀴어 전문가와, 정확히 내가 원하는 플레이를, 안심하고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요원한 일이겠지….

시간이 지나면서 섹스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다크 룸은 만실이었고, 중앙 침대가 비좁아졌다. 경찰 옷을 입은 언니는 벽에 서서 조교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더 보고 싶은 장면이 많았지만 지하철 시간 때문에 10시 반쯤 일어나야 했다.(행사는 자정까지 열렸다) 몇몇 사람과 펫라이프닷컴 친구를 맺고, 샤워를 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에 돌아오며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엉덩이가 기분 좋게 아렸다. 여행 내내, 나는 붉은 멍이 차차 보라색으로, 노란색으로, 살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그 날을 추억했다. 

http://ildaro.com/8229

[인터뷰] 플레이보이, 누드와 직업

어떻게 누드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나?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여성 노동의 성매매적 요소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다. 여기에 좀 더 정확한 이해와 인식을 위해 2013년 여름부터 시작했다.

실제로 겪은 누드모델은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

생각보다 누드가 쓰이는 곳이 많다. 미술이나 사진 작업 외에 의료상의 촬영이나 단편영화의 단역, 오페라 공연에 섭외된 사람도 있다. 시작하기 전에는 성적인 요소가 있어 성희롱이나 추행에 노출된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럴 겨를조차 없는 육체노동이었다.

누드모델에 대한 관심은 언제 처음 생겼나?

대학교 2학년 때 사귀던 언니의 라이브 공연에서 미술 퍼포먼스를 본 적이 있다. 그때 퍼포먼스를 했던 사람이 누드모델 일을 한다고 해서 관심이 생겼다. 전부터 누디스트 문화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관심을 갖고, 일을 하면서 ‘누드’라는 단어에 대해 나름의 정의가 내려졌나?

존 버거의 말을 빌리면, ‘누드는 복장의 한 형식’이다. 그런데 정의를 내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누드라는 단어는 분명히 사전에 정의되어 있지만, 대부분 사람이 ‘누드’ 하면 젊은 여성의 신체를 떠올린다. 야하다는 인식과 함께. 왜 사람들이 누드를 야하다고 인식하고, 젊은 여성의 신체를 먼저 떠올릴까? 아무래도 상업적으로 그런 이미지를 이용하고, 반복적으로 주입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서양화에 주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거나 음란물로 소개한 역사가 있지 않나. 재미있는 건 원래 누드모델은 남자의 영역이었다는 거다. 누드는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에서 생긴 장르인데, 그때만 해도 종교적이거나 이상적인 것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그래서 주로 남자의 신체를 이용해 신을 묘사하는 데 쓰였다. 그런데 근대 이후 등장한 서양화에 여성이 등장하면서 지금의 인식을 만든 거다.

지금의 인식 속에서 누드모델 일을 하는 젊은 여성으로 사는 건 어떤 건가? 그리고 당신은 페미니스트이자 레즈비언이다. 언제나 선입견이나 불편한 시선과 마주해야 할 것 같은데.

좋다. 레즈비언이나 누드모델이어서가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밖으로 나가면 여전히 차별과 혐오가 넘치는 사회라는 것이 피곤하기도 하다. 내가 나서서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나 싶다가도 일단 내 삶부터 잘 꾸리고, 주변부터 바꿔나가자는 생각에 참곤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혹은 서울에서 무엇보다 ‘누디’했으면 하는 게 있다면?

시선의 문제는 평등한 것 같지만, 사실 낙차가 존재한다. 남성이 여성을 응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것이 이런 낙차다. 예를 들어, 누드라는 단어가 쓰이는 맥락에 대해 조금 더 고려되었으면 한다. 광고나 영화, 게임 등에서 벗는 여성의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생각하면서, 어떤 알몸은 너무나 불편하게 여긴다. 퀴어 퍼레이드에서 성 소수자의 노출은 음란하다며 비난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열린 대중적 축제의 노출은 훨씬 심하다. 누드라는 단어는 이런 낙차를 은폐한다.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는 것과 금지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투명하게 직시했으면 한다. 나는 이런 낙차를 거스르는 작업을 하고 싶다. 나에게는 페미니즘, 레즈비어니즘이 그렇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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