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페미니즘은 소문자 f로 시작해 복수형 -s로 끝난다(미완)

모 잡지 기고 거절당한 글 서문 백업.

(가제)페미니즘은 소문자 f로 시작해 복수형 -s로 끝난다

“페미니즘은 소문자 f로 시작해 복수형 -s로 끝난다.”는 말은 이제 원출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널리 퍼진 문장이다. 페미니즘은 (대문자 F로 대표될 수 있을 정도로) 합의된 개념이 아니며, 사회의 근본 모순을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지부터 운동의 주체를 누구로 설정할 것인지까지 수없이 다양한 ‘노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의제, 주체, 지향, 전략 등 몇 가지 지표를 통하여 페미니즘의 세대(물결)나 계보(갈래)를 구분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구분 안에서조차 페미니스트들은 언제나 서로에게 동일성보다 차이를 발견하곤 한다.

최근 한국의 페미니즘은 거칠게 이름 붙여진 ‘교차성 페미니즘’과 ‘래디컬 페미니즘’으로 양분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명명의 적절성을 논하는 것1)과는 별개로, 양자 모두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와 지형 속에서 그 위치를 짚어 보아야 한다 :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의제화한 역사는 짧지 않다. 1913년 ‘송죽회’로부터, 가깝게는 1970년대의 여성학 학제화, 1980년대의 여성운동단체 조직, 1990년대의 성희롱 의제화와 출판문화운동, 2000년대의 호주제 폐지ㆍ반성폭력ㆍ성정치ㆍ사이버 문화운동까지, 한국 여성운동은 사회적 변화에 발맞추어 정치세력화와 대중화를 고민하며 발전해왔다. 민족ㆍ민주ㆍ민중 운동의 맥락 속에서 법 개정을 주요 목표이자 전략으로 삼은 한국의 여성운동은 태생적으로 외연과 확장성이 넓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2010년대 중반을 대중적 페미니즘 ‘물결’의 분기점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다수 존재한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확산된 해시태그 릴레이2),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에 응답한 포스트잇 추모 시위, ‘4非 운동3)’ㆍ‘탈 코르셋’ 실천4), ‘혜화역 시위5)’, 낙태죄 폐지 운동 등 다양한 의제를 중심으로 페미니즘은 급격히 대중화되고 분화하였다. 시민단체로 조직되고 노동조합ㆍ정당으로 대의되는 대신 개인 미디어를 이용하는 ‘직접 말하기’ 세대의 여성들은 기존의 여성운동을 기득권과 결탁한 ‘적폐’로 규정하며 자신들을 ‘랟펨(래디컬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하였다.

‘시대정신’이 된 페미니즘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2018년은 ‘미투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지현 검사는 2018년 1월 검찰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로 권력형 성범죄 피해 고발의 흐름을 촉발시켰다. 2016년부터 연달아 알려진 문학계ㆍ예술계ㆍ교육계 등 각 분야의 성폭력 피해 고발의 맥락에서 서지현 검사의 미투가 ‘최초’라고 볼 수는 없으나, 검사라는 지위를 가지고도 성별을 근거로 한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성폭력이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기본값(디폴트)’이며, 수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입고도 이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수면 위로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된다.

최영미 시인ㆍ서지현 검사ㆍ김지은 씨의 미투(성폭력 피해 고발)와 박원순 서울시장ㆍ오거돈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 등으로 여성폭력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고 핵심적인 의제로 자리매김했다.

(업데이트 예정)

1) 최근의 대중적 페미니즘(‘교차성 페미니즘’과 ‘래디컬 페미니즘’)들은 성별 권력의 불균형을 사회의 ‘근본 모순’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급진주의 페미니즘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만, 연대의 확장성과 변혁 주체 설정의 문제에서 차이가 있기에 양자를 각각 ‘확장적 (급진)페미니즘’과 ‘배타적 (급진)페미니즘’으로 명명하기를 제안한다. (현재 ‘래디컬 페미니즘’이라고 자칭하는 일군의 경향은 ‘생물학적’ 성별을 본질적이고 고정적인 속성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성 본질주의 페미니즘이라고도 명명할 수 있다.)

2) ‘# OO계_내_성폭력’, ‘#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등

3) 섹스ㆍ연애ㆍ결혼ㆍ출산을 거부하는 캠페인

4) 화장ㆍ치마ㆍ하이힐 등 성별화된 꾸밈 노동을 거부하는 캠페인

5) ‘H대학교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응으로 촉발된 디지털 성범죄 편파수사 규탄시위

여름, 2017에서 봄, 2018까지

그녀와 연애 씩이나 하게 된 건 일종의 위악이었다. 씨발 나 다시는 페미니스트 안 사겨. 고학력자 지긋지긋해, 여자를 고르는 기준은 역시 팔씨름이지, 이죽이던 말들. 얼마 후 그 ‘이상형’에 놀랄만큼 부합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일단 키가 백팔십에, 어릴 때 부터 농구를 했고, 체대를 갔고, 대학 졸업을 못해서 고졸이고, 지금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 퀴어문화축제같은 거 안했으면 좋겠고 이쪽 인맥도 싫고 조용히 둘이서 지내는게 좋다던 사람, 내 치마가 너무 짧다고 항상 불만이던 사람, 누드모델이란 직업은 인정하지만 ‘내 여자’는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뭐가 문젠지도 모르던 사람.

번개로 처음 만난 날 당연한 듯 모텔로 향하려는 내게 그녀는 ‘난 사귀는 사람이랑만 자’ ‘그러니까 우리 사귀자’ 라며 무슨 로비스트 같은(내 은밀하고 유치한 취향을 파악한 누군가가 파견한 듯한) 말들을 던졌다. 만나는 내내 나는 그녀의 말도 안되는데서 삑사리가 나는 맞춤법, 뜻밖의 상식부족 등을 친구들과 낄낄대며 그녀를 깎아내렸다. 무엇보다, 영원히 함께하자, 너랑 결혼할거야, 같은 말들을 ‘겁도 없이’ 내뱉는 그녀를 비웃었다. (역시) 무식하기는. 요새 누가 평생 한 사람을 만나, 라면서.

그녀의 생일날, 선물이랍시고 육보시를 하겠다며 란제리를 입은 나에게 애인은 규리야 사랑한다, 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예상했지만 역시나 당황스러웠다. 사랑이 뭘까? 라며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후 오래, 나는 그저 그녀의 기분에 맞추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나도 사랑해.

그 거짓말을 하는 것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했단 걸 이제야 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언제나, 믿기를 염원하던 말이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한 게 너였기 때문에. 왜냐하면 너는 누구를 무시하지도 비웃지도 이죽대지도 낄낄거리지도 않는 사람이니까, 영원이니 평생이니 하는 말을 하면서 내 눈을 똑바로 보곤 했으니까. 너는 그토록 진실한 사람이고, 무엇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자격이 없고, 그러니 네가 떠나는 건 가장 너다운 일이란걸, 이제서야.

이 관계에는 레퍼런스가 너무 많아서 헛웃음이 나온다며 지금도 나는 건방을 떤다. 근데 그저 네가 너무 보고싶다.. 모든 게 후회스럽고, 가슴이 저민다는 말이 뭔지 알겠다. 돌아오지도, 돌아보지도 않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너를 사랑한다고, 이제는 말할 수가 없기에 여기에 쓴다. 조금은 너를 닮고 싶어서.

(2018년 4월 13일)

여름, 2018

2년 전 두 달 정도 만났던 M에 대해 쓴다면 이 문장으로 시작하리라고 늘 생각했다.

“너는 그렇게 남자를 싫어하면서 어떻게 남자 앞에서 옷을 벗어?”

그 때 내 직업은 누드모델이었다. 파트타임이 아닌 전업으로, 햇수로는 5년이 넘어가는 프로 누드모델. 대학교와 문화센터, 동호회 화실과 작가의 작업실까지 봇짐을 지고 전국을 오가는 나날이었다. 레즈비언으로 완전히 정체화한 후 번개와 클럽, 원나잇 등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거침없이 누리던 때이기도 했다. 레즈이기에 망정이지, 이성애자가 이렇게 조심성 없이 굴었다면 진작에 성병에 걸리거나 임신을 했을거라고 생각하며.

M은 어플에서 만난 원나잇 상대였는데, 일이 없을 때면 요일마다 달리 불러대는 상대가 서넛은 되는 걸 몰랐던 그녀는 내게 연애를 걸었다. 지속적이고 독점적인 신뢰관계에 기대가 없던 나와 달리 M은 착실하게 연애 테크트리를 타려고 했다. 내 주말이 모두 제것인 양 굴었고, 급기야 가장 친한 친구라며 어릴 때 함께 자란 사촌오빠를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사촌에게 커밍아웃을 넘어 여자친구(?) 소개라니, 이건 또 새로운 전개군.

영등포에서 만난 M의 사촌오빠는 깔끔하게 천박한 남자였다. 통신사 대리점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나온 지 오래된 기종인 내 핸드폰을 대뜸 집어들더니 바꿀 때가 됐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누드모델에 대한 무례한 질문들로 끝까지 날 불쾌하게 했던 자리가 끝나고, M은 나에 대한 그의 감상을 전했다. “걔 시계 비싼 거 찼더라?”

물려받은 낡은 오메가였다. 내 손목을 흘금거렸을 그의 말을 전하는 M을 보며, 사실 그건 M의 생각이나 다름없다고 느꼈다. 내가 혐오한 것은 그의 성별이 아니라 그의(그리고 너의) 얄팍함이라고 굳이 설명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섹파 주제에 술을 마시면 영 팔힘을 못 써서 꼭 상위로 자위하듯 마무리하게 만들었던 술버릇을 싫어했고, 자라를 닮은 이목구비가 모아놓으면 묘하게 잘생겼던 얼굴과, 슬랙스가 잘 어울렸던, 굴곡없이 쭉 뻗은 다리를 좋아했다.

이 글을 읽는다면 네가 기분이 나빴으면 좋겠다. 연락 그만 해.

(2020.10.)

합정동 풀잎미용실

합정동에서 40년 간 미용실을 해 오신 풀잎미용실 권인숙 할머니. 이 동네 n년 살았는데 처음 가봤다. 촬영을 앞두고 드라이를 해야 했는데, 평소에 다니던 상수동 미용실(드라이 3만원)로 걸어가다가 풀잎미용실 불이 켜져 있길래 충동적으로 들어가 봤다. 낡았지만 정갈한 내부, 볕 드는 곳에 빼곡한 작은 화분과 선인장들. 아마도 가게 안쪽으로 연결된 살림집에 사시는 듯, “계세요?” 청하자 부스스 나오신다. 원래는 전화로 예약을 받고 그 때만 가게를 여신다고. 투블럭 반삭(에서 기르는 중)인 내 머리를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으신다. “아가씨는 미술 해요?” 하시고 마는.

원래 개성에서 태어나 전쟁통에 서울로 피난오셨고, 미용학교 졸업하고 안국동에서 10년, 합정동 이 가게에서 40년 미용을 하셨다고. 평생 한 일 하신 것으로 방송에 출연한 적도 있고, 어릴 때 이 동네 살며 항상 할머니에게 머리를 잘랐다 작가가 된 분이 낸 책에 인터뷰가 실리기도 하셨단다. 수줍어 하시면서도 이런 저런 자료들을 꺼내 보여주셨다.

안국동에서 미용실을 할 때는 지금 길상사 자리에 있는 요정에서 일하는 ‘기생들’ 머리를 만졌다고 했다.

“그때는 연애 실패하고 몸 버린 아가씨들이 기생이 됐어.” 하시길래,

“전 가끔 그런 언니들이 부러워요.” 했다.
“그러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 해야지. 부모님은 어디 계신고? 아가씨는 올해 몇 살이야?”
“올해 스물 아홉이에요. 부모님은 필운동 사세요. 경복궁 옆에.”
“그렇게 안 들어 보이는데. 서울 사시는데 왜 따로 살아?”
“엄마아빠랑 못 살겠어요.”
“이 동네도 많이 올랐지?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 둬. 저기 사는 언니는 몇 년 전에 7천으로 샀는데 지금 2억이 됐어.”
“제가 돈이 어딨어요..”

이런 얘기들. 싫지 않았다. 한참 내 말상대 해 주시고 옆머리까지 미니고데기로 펴 주시곤, 만원만 받으신다. “파마하러 올게요-” 했더니 힘들어서 안 하신다고.. 십 년만 젊어도 가발이랑 두상을 연구하고 싶다고 하시길래, 지금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살림의료생협의 반세기커플 프로젝트에서 본, 여성영화제 상역작 영화 생각이 났다. 다음에 한 번 보여드릴까?
황사 맞으며 머리 팔랑이고 촬영 잘 다녀 왔다. 오늘까지도 기분이 좋아서, 기록.

(2015년 2월 27일)

“여자를 가장 잘 아는 두 여자”

어제 전경린 <천사는 여기 머문다> 북토크 다녀 왔다.

문학동네는 왜 전경린 작가를 자꾸 ‘연애소설 잘 쓰는 작가’로 네이밍 하는건지 심히 불만이고, 40명만 미리 뽑아서 하는 작가와의 대화에 참가하는 독자들은 왜 자기 연애상담 따위를 작가에게 늘어놓는지 모르겠다. 변영주감독님이 ‘라디오 상담실 같아요’라고 한 코멘트, 현장에서는 재치있고 웃음 나오는 발언처럼 소화됐지만 나는 뼈가 있는 말이라고 느꼈고.

동거녀, 이혼녀, 불륜녀..이런 네이밍을 전경린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라벨링하는 것, 그것은 독해를 위한 한 스텝이어야 하지 최종적 평가여서는 안되는데.. 자기가 결혼은 하기 싫고 애는 낳고 싶은데 어쩌면 좋냐는 질문을 왜 작가님한테 하고 앉았냐…..

내게 전경린 소설은 여성의 ‘연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역설적 자유’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소설집 중 ‘폭우에 떨어진 낙과같은 여자들’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일견 부정적 표현이지만 나는 그 낙과에 감정이입한다. 낙과처럼 땅에 떨어졌기에 자유로운 여자들, 가부장-자본주의에서 ‘팔리기 위해’ ‘상품’으로 자기를 자발적으로 위치시키는 탐스러운 과일이 되고자 하는 여자들이 아니라, 자신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래서 이미 자신은 특정한 트랙에서 벗어났다고 여기는, ‘그런’ 여자들이 누리는, 역설적 자유.

말하자면 뻔한 얘기다. 착한 여자는 천당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는. 그렇지만 뻔한 구절이 내 삶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알라딘에서 하는 작가와의 대화 신청 페이지에서, 신청 이유를 나는 이렇게 적었다. “전경린 작가님과 변영주 감독님은 내게 용기를 주는 분들이다”고. 대화 중 변감독님이 “나는 한 가지를 선택할 때 다른 것들에 대한 욕망은 사라진다”고 하신 것도 그렇고, 요즈음 내게 용기와 확신을 주는 구절들이다..

암튼 다음은 기억나는대로 끄적인 전경린 작가의 코멘트 들. 워딩은 정확하지 않고, 그냥 내가 재구성한 것이니 틀릴 수도 있음.

(전경린이 소설에서 연애를 주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지금 한국의 2-30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하게 다가오는게 연애인 것 같이 얘기되지만, 사실 한국사회에서 자유연애라는게 사회적으로 용인된 것은 불과 몇십년이 되지 않았지요. 아직도 어떤 나라에서는 가족이 허락하지 않는 연애를 했던 여성을 지구끝까지 쫓아가서 살해하는 일이 일어나고. 그런 의미에서 연애는 개인의 역량이 모두 발휘되는 장인 동시에, 사회가 허용하는 관계의(?) 범위, 그 상상력이 어디까지인지를 드러내는 장이기도 합니다.”

(한 독자가 <백합의 벼랑길>마지막 부분을 낭독한 후)
“그 부분은 저도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사람들은 슬픔이 내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기쁨이야말로 개인의 가장 은밀한 부분, 공유하기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맥도날드 멜랑콜리아>등에서 마산, 진해의 풍경이 세밀히 묘사되었다는 질문)
“변영주 감독님의 <화차>에도 마창진(?)이 풍경이 잘 드러나서 주민들이 영화를 보며 즐거워했다고 들었어요. 요 즈음 저는 한 작가가 어떤 지역에서 거주하고 생활할 때, 작품에서 그것이 드러나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2014년 8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