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택시기사 같은 일회성 마주침 포함) 레즈비언 커밍아웃을 한다.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이성애자로 전제하고 건네는 스몰토크에는 거짓으로 답하지 않는다. 요새는 운전연수를 받고 있는데, 연수 강사님(40대 남성)이, 부모님이 서울에 계시는데 왜 자취하냐고 묻길래 “동거하느라 집 나왔다가 헤어지고 다시 못돌아갔어요.” 했더니 혼자서 납득하곤 “남자한테 상처받고 페미니스트가 된 거에요?” 라고 물었다.(페미니스트 커밍아웃은 만나고 1초만에 했음. 여자 운전자 욕하길래..) 그래서 저는 레즈비언이고, 남자는 싫어할 만큼의 관심도 기대도 없다고, 한국에서 두 성별이 서로 탓하면서 싸우는 건 사실 서로를 너무 원하기 때문이라고 나의 이론ㅋ을 설파했다. 강사님은 그저 혼란스러워 보였음ㅋㅋㅋㅋ 침묵속에 연수가 이어졌는데 오늘따라 코스 난이도가 상당했고.. 내가 “선생님 지금 제가 페미니스트라서 괴롭히려고 이 코스 도는거죠?” 라고 농을 쳤다. 둘다 빵터졌고 대화도 연수도 어찌어찌 잘 마무리하고 귀가. 애인은 한번보고 말 사이에 너무 TMI 아니냐고 하는데, 나는 이마트 캐셔 붙들고 커밍아웃 한 적도 있음. 암튼 걍 세상을 다 바꿀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만나는 사람한테는 성소수자가 이렇게 살고 있다고 태연하게 알리는 것이 내가 택한 실천의 방식임.

첨언하자면, 사랑하니까 싸우는 거다=싸우는 건 바뀔 거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라는 아이디어는 울 엄마의 한탄에서 얻었다: “난 니네아빠랑 말 섞고 싶지도 않아.”

(2021년 10월 29일)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2018년 10월 22일은 ‘오늘부터 1일’이라는 관용어에 부합하는 날은 아니다. 그 날은 상봉동 버스터미널 근처의 참치집에서 번개로 처음 만난 날이다. 함께 담배를 피러나와 둘이 있게 된 자리에서, 뭐하시는 분이냐고 묻는 내게 그녀는 나무를 인두로 태워 그린 반려동물 초상화들을 보여줬다. 나는 키우던 강아지 이야기를 하며 나도 하나 주문하고 싶다고 대답했는데, 집에 와 그녀가 알려준 인스타에 들어가 보니 그건 그냥 초상화가 아니라 유골 보관함이었다.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정정하지 않았던 모습이 생각나, 다음에 만날 때는 조금은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애프터가 오기도 전에 김치국을 마셨다는 말이다.

이틀 뒤 회기동에서 첫 데이트를 했고, 그날 밤 그녀의 집에 따라갔다. 짐짓 술에 취한 척 하며, 오래도록 고양이를 무서워 했다는 사실을 감추고, 고양이 엄청 좋아한다는, 애기들 보고 싶다는 개구라를 치며 쫓아들어간 집이었다. 침대는 기숙사 이층침대같이 좁았는데, 우리는 거기서 헤드윅의 로고처럼 겹쳐서 잤다.

다음 날도 출근인, 외박 계획이 없었던 평일이라 새벽같이 일어났다. 부스럭대며 스타킹을 신는데 그녀가 같이 일어났다. 신내동 종점에서 필운동 본가를 찍고 회사까지 데려다 줬던 그 아침을 그녀는 아직도 기적이라고 부른다.

일주일 정도였나, 그 이후엔 내내 나의 ‘당’(그 ‘밀당’ 맞음)이 이어졌다. 그녀가 목수라는 직업을 소개할 때 부터 나는 결혼을 마음먹었는데, 첫 섹스를 하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사귀자는 말을 못 들었으니 유교걸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어느 이자카야에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던진 내 구애에도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자존심이 확 상해 술집에서 나와 택시를 잡았다. 상봉에서 종로까지 가는 길은 내부순환로를 타는 게 가장 빠르다. ‘내부로 갈까요?’ 라고 묻는 기사의 말에 나는 ‘네’ 했다가 바로 ‘아니, 시내로 가주세요’ 라고 정정했다. 그녀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라고 연락하면 빠르게 차를 돌려 그녀에게 안길 수 있도록.. 그렇게 시내를 꽤나 오래 가다가.. 내가 먼저 전화를 했고.. 이것은 우리 관계의 패턴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10월 22일을 기념일로 정했다. 정확히는 10월 22일 저녁 9시 정도, 내가 언니를 처음 본 바로 그 순간이, 우리의 시작이라고.

(2021년 10월 24일)

2021 한국퀴어영화제 다큐멘터리 “모가나” GV의 일부

2021 한국퀴어영화제 중 다큐멘터리 “모가나” Q톡(GV)의 일부를 남겨둠.

“(모가나가 퀴어하다면 어떤 부분에서 그렇다고 생각하는지)우리 사회에서,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문명 사회에서 섹스를 남녀 사이에, 일대일 그것도 비슷한 연령과 어떤 표준 범위 내에 체중을 가진, 같은 인종 사이에, 이런 여러 가지 기준들이 있잖아요. ‘정상’이라고 부르는. 근데 모가나 같은 경우는 일단 그녀의 나이, 그리고 바디 사이즈가 플러스 사이즈라는 것, 그리고 중년 여성이 성적인 것에 굉장히 적극적이고 그걸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되게 퀴어한 것 같아요. 왜냐면 우리가 퀴어라는 단어를, 성소수자만을 가리키려고 쓰는 단어는 아니잖아요 원래는. 규범적이지 않고, 설명하기 어렵고 이런 것들을 퀴어하다고 불렀으니까. 어원 자체가. 그런 면에서 모가나도 되게 퀴어하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정상이라는 게 참 웃기죠.”

더 보기 “2021 한국퀴어영화제 다큐멘터리 “모가나” GV의 일부”

(가제)페미니즘은 소문자 f로 시작해 복수형 -s로 끝난다(미완)

모 잡지 기고 거절당한 글 서문 백업.

(가제)페미니즘은 소문자 f로 시작해 복수형 -s로 끝난다

“페미니즘은 소문자 f로 시작해 복수형 -s로 끝난다.”는 말은 이제 원출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널리 퍼진 문장이다. 페미니즘은 (대문자 F로 대표될 수 있을 정도로) 합의된 개념이 아니며, 사회의 근본 모순을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지부터 운동의 주체를 누구로 설정할 것인지까지 수없이 다양한 ‘노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의제, 주체, 지향, 전략 등 몇 가지 지표를 통하여 페미니즘의 세대(물결)나 계보(갈래)를 구분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구분 안에서조차 페미니스트들은 언제나 서로에게 동일성보다 차이를 발견하곤 한다.

최근 한국의 페미니즘은 거칠게 이름 붙여진 ‘교차성 페미니즘’과 ‘래디컬 페미니즘’으로 양분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명명의 적절성을 논하는 것1)과는 별개로, 양자 모두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와 지형 속에서 그 위치를 짚어 보아야 한다 :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의제화한 역사는 짧지 않다. 1913년 ‘송죽회’로부터, 가깝게는 1970년대의 여성학 학제화, 1980년대의 여성운동단체 조직, 1990년대의 성희롱 의제화와 출판문화운동, 2000년대의 호주제 폐지ㆍ반성폭력ㆍ성정치ㆍ사이버 문화운동까지, 한국 여성운동은 사회적 변화에 발맞추어 정치세력화와 대중화를 고민하며 발전해왔다. 민족ㆍ민주ㆍ민중 운동의 맥락 속에서 법 개정을 주요 목표이자 전략으로 삼은 한국의 여성운동은 태생적으로 외연과 확장성이 넓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2010년대 중반을 대중적 페미니즘 ‘물결’의 분기점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다수 존재한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확산된 해시태그 릴레이2),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에 응답한 포스트잇 추모 시위, ‘4非 운동3)’ㆍ‘탈 코르셋’ 실천4), ‘혜화역 시위5)’, 낙태죄 폐지 운동 등 다양한 의제를 중심으로 페미니즘은 급격히 대중화되고 분화하였다. 시민단체로 조직되고 노동조합ㆍ정당으로 대의되는 대신 개인 미디어를 이용하는 ‘직접 말하기’ 세대의 여성들은 기존의 여성운동을 기득권과 결탁한 ‘적폐’로 규정하며 자신들을 ‘랟펨(래디컬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하였다.

‘시대정신’이 된 페미니즘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2018년은 ‘미투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지현 검사는 2018년 1월 검찰 상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로 권력형 성범죄 피해 고발의 흐름을 촉발시켰다. 2016년부터 연달아 알려진 문학계ㆍ예술계ㆍ교육계 등 각 분야의 성폭력 피해 고발의 맥락에서 서지현 검사의 미투가 ‘최초’라고 볼 수는 없으나, 검사라는 지위를 가지고도 성별을 근거로 한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성폭력이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기본값(디폴트)’이며, 수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입고도 이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수면 위로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된다.

최영미 시인ㆍ서지현 검사ㆍ김지은 씨의 미투(성폭력 피해 고발)와 박원순 서울시장ㆍ오거돈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 등으로 여성폭력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고 핵심적인 의제로 자리매김했다.

(업데이트 예정)

1) 최근의 대중적 페미니즘(‘교차성 페미니즘’과 ‘래디컬 페미니즘’)들은 성별 권력의 불균형을 사회의 ‘근본 모순’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급진주의 페미니즘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만, 연대의 확장성과 변혁 주체 설정의 문제에서 차이가 있기에 양자를 각각 ‘확장적 (급진)페미니즘’과 ‘배타적 (급진)페미니즘’으로 명명하기를 제안한다. (현재 ‘래디컬 페미니즘’이라고 자칭하는 일군의 경향은 ‘생물학적’ 성별을 본질적이고 고정적인 속성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성 본질주의 페미니즘이라고도 명명할 수 있다.)

2) ‘# OO계_내_성폭력’, ‘#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등

3) 섹스ㆍ연애ㆍ결혼ㆍ출산을 거부하는 캠페인

4) 화장ㆍ치마ㆍ하이힐 등 성별화된 꾸밈 노동을 거부하는 캠페인

5) ‘H대학교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응으로 촉발된 디지털 성범죄 편파수사 규탄시위

여름, 2017에서 봄, 2018까지

그녀와 연애 씩이나 하게 된 건 일종의 위악이었다. 씨발 나 다시는 페미니스트 안 사겨. 고학력자 지긋지긋해, 여자를 고르는 기준은 역시 팔씨름이지, 이죽이던 말들. 얼마 후 그 ‘이상형’에 놀랄만큼 부합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일단 키가 백팔십에, 어릴 때 부터 농구를 했고, 체대를 갔고, 대학 졸업을 못해서 고졸이고, 지금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 퀴어문화축제같은 거 안했으면 좋겠고 이쪽 인맥도 싫고 조용히 둘이서 지내는게 좋다던 사람, 내 치마가 너무 짧다고 항상 불만이던 사람, 누드모델이란 직업은 인정하지만 ‘내 여자’는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뭐가 문젠지도 모르던 사람.

번개로 처음 만난 날 당연한 듯 모텔로 향하려는 내게 그녀는 ‘난 사귀는 사람이랑만 자’ ‘그러니까 우리 사귀자’ 라며 무슨 로비스트 같은(내 은밀하고 유치한 취향을 파악한 누군가가 파견한 듯한) 말들을 던졌다. 만나는 내내 나는 그녀의 말도 안되는데서 삑사리가 나는 맞춤법, 뜻밖의 상식부족 등을 친구들과 낄낄대며 그녀를 깎아내렸다. 무엇보다, 영원히 함께하자, 너랑 결혼할거야, 같은 말들을 ‘겁도 없이’ 내뱉는 그녀를 비웃었다. (역시) 무식하기는. 요새 누가 평생 한 사람을 만나, 라면서.

그녀의 생일날, 선물이랍시고 육보시를 하겠다며 란제리를 입은 나에게 애인은 규리야 사랑한다, 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예상했지만 역시나 당황스러웠다. 사랑이 뭘까? 라며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후 오래, 나는 그저 그녀의 기분에 맞추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나도 사랑해.

그 거짓말을 하는 것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했단 걸 이제야 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언제나, 믿기를 염원하던 말이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한 게 너였기 때문에. 왜냐하면 너는 누구를 무시하지도 비웃지도 이죽대지도 낄낄거리지도 않는 사람이니까, 영원이니 평생이니 하는 말을 하면서 내 눈을 똑바로 보곤 했으니까. 너는 그토록 진실한 사람이고, 무엇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자격이 없고, 그러니 네가 떠나는 건 가장 너다운 일이란걸, 이제서야.

이 관계에는 레퍼런스가 너무 많아서 헛웃음이 나온다며 지금도 나는 건방을 떤다. 근데 그저 네가 너무 보고싶다.. 모든 게 후회스럽고, 가슴이 저민다는 말이 뭔지 알겠다. 돌아오지도, 돌아보지도 않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너를 사랑한다고, 이제는 말할 수가 없기에 여기에 쓴다. 조금은 너를 닮고 싶어서.

(2018년 4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