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

여름, 2017에서 봄, 2018까지

그녀와 연애 씩이나 하게 된 건 일종의 위악이었다. 씨발 나 다시는 페미니스트 안 사겨. 고학력자 지긋지긋해, 여자를 고르는 기준은 역시 팔씨름이지, 이죽이던 말들. 얼마 후 그 ‘이상형’에 놀랄만큼 부합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일단 키가 백팔십에, 어릴 때 부터 농구를 했고, 체대를 갔고, 대학 졸업을 못해서 고졸이고, 지금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 퀴어문화축제같은 거 안했으면 좋겠고 이쪽 인맥도 싫고 조용히 둘이서 지내는게 좋다던 사람, 내 치마가 너무 짧다고 항상 불만이던 사람, 누드모델이란 직업은 인정하지만 ‘내 여자’는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뭐가 문젠지도 모르던 사람.

번개로 처음 만난 날 당연한 듯 모텔로 향하려는 내게 그녀는 ‘난 사귀는 사람이랑만 자’ ‘그러니까 우리 사귀자’ 라며 무슨 로비스트 같은(내 은밀하고 유치한 취향을 파악한 누군가가 파견한 듯한) 말들을 던졌다. 만나는 내내 나는 그녀의 말도 안되는데서 삑사리가 나는 맞춤법, 뜻밖의 상식부족 등을 친구들과 낄낄대며 그녀를 깎아내렸다. 무엇보다, 영원히 함께하자, 너랑 결혼할거야, 같은 말들을 ‘겁도 없이’ 내뱉는 그녀를 비웃었다. (역시) 무식하기는. 요새 누가 평생 한 사람을 만나, 라면서.

그녀의 생일날, 선물이랍시고 육보시를 하겠다며 란제리를 입은 나에게 애인은 규리야 사랑한다, 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예상했지만 역시나 당황스러웠다. 사랑이 뭘까? 라며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후 오래, 나는 그저 그녀의 기분에 맞추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나도 사랑해.

그 거짓말을 하는 것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했단 걸 이제야 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언제나, 믿기를 염원하던 말이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한 게 너였기 때문에. 왜냐하면 너는 누구를 무시하지도 비웃지도 이죽대지도 낄낄거리지도 않는 사람이니까, 영원이니 평생이니 하는 말을 하면서 내 눈을 똑바로 보곤 했으니까. 너는 그토록 진실한 사람이고, 무엇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자격이 없고, 그러니 네가 떠나는 건 가장 너다운 일이란걸, 이제서야.

이 관계에는 레퍼런스가 너무 많아서 헛웃음이 나온다며 지금도 나는 건방을 떤다. 근데 그저 네가 너무 보고싶다.. 모든 게 후회스럽고, 가슴이 저민다는 말이 뭔지 알겠다. 돌아오지도, 돌아보지도 않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너를 사랑한다고, 이제는 말할 수가 없기에 여기에 쓴다. 조금은 너를 닮고 싶어서.

(2018년 4월 13일)

옥탑방

집에 놀러 온 친구가 그려줬다. 내 소듕한 옥탑방.

난 옥탑이 좋다고, 아파트 살기 싫다는 말을 하면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팔기 위해서 사는 거라는 말을 듣는다. 나한테 그만한 돈이 없다는 건 둘째치고, 여전히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하는 말들이 멀게만 느껴진다. 몇 안되는 친구들은 어느덧 인서울 자가 아파트 소유자가 되었고, 강남 입성에 성공한 동생은 둘째를 임신했다. 증권사 다니는 막내도 회사 동료와 올해 7월로 결혼 날짜를 잡았다. 나만 여기에 이러고 있다. 난 여전히 엄마아빠의 아픈 손가락이고, 냉장고에 붙여놓은 할아버지의 사진은 오늘도 날 울게 한다. 딸 도리, 손녀 도리, 언니 도리, 그리고 애인 도리를 하면서 ‘순리대로’ 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추첨날짜 기다리는 것도 못 참아서 매번 즉석복권을 사는 내가, ‘뭐가 되려고’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창문 열어놓고 바람 맞으며 방에서 연초 피우는 포즈만은 울프인데 말이지.

(2022년 2월 6일)

다시 누드모델

미술(누드)모델 일을 얼마 전에 다시 시작했다. 사무직 생활을 하면서이기도 했고, 20년 21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대면 미술수업이 거의 중단되면서 일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한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 작년에 드디어 사무직 일을 때려 치고, 다시 에이전시에 연락했다. 2013년 여름에 시작한 일이니 올해는 햇수로는 9년이 된다.

누드모델 일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건 두가지다. “팬티까지 벗어요? 오래 버티는 거 힘들지 않아요?” “네, 누드모델인걸요. 아뇨, 가만히 있는 것 보다 자세를 바꾸는 게 더 어려워요.”

포즈는 크게 두 타입으로 나뉜다. 조소나 유화처럼 한 자세를 한 작품으로 만드는 고정 포즈. ‘손을 푼다’고 표현되는, 3분~5분 크로키 포즈. 어느 쪽이든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자세를 취하려면, 몸의 모든 뼈에 각도를 줘야 한다. 척추는 회전하고, 어깨와 골반은 기울어지고, 무릎도 팔꿈치도 일직선이어선 안된다. 이걸 갖추면서도 2,30분의 긴 타임은 무조건 안정적이어야 한다. 근육경련이 일어날 지언정, 넘어지는 건 최악이다. 크로키에선 포즈 타임이 짧을수록 더 어려운 자세를 취해야 한다. 타이머가 울릴 때마다 동서남북 입상/좌상/와상을 골고루 배치한다. 모든 포즈가 제각기 아름다우면서 달라야 한다. 암튼 *나 힘들다..

미술모델 일은 석사논문 쓰려고 시작한 일이다. 일종의 언더커버. 근데 너무 재밌었던 거지. 처음 2년은 슬렁슬렁 하다가, 한 3년 정도는 (대학원 포함) 다른 일 다 때려치고 전업으로 살았다. 시립대, 홍대, 이대, 서울대, 계명대, 제주대, 충북대, 청강대.. 학기 4개월은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정말 정신이 없다. 술도 잘 못마시고, 틈틈이 운동하고. 일할 때 근육을 많이 쓰니까 근력운동은 더 할 필요가 없고, 요가나 스트레칭이 가장 좋다.

돈을 그렇게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니다. 시급은 쎄지만, 이동시간이 길고 체력소모가 커서 하루에 3~4시간이 최대이고(나는 그랬다), 일이 매일 있는 건 아니니까. 월 수령액으로 치면 사무직 초임이랑 비슷한 정도.. 가끔 영화나 잡지 대역이 들어오면 좀 낫고. 그렇지만, 나는 이 일이 좋다. 가장 좋은 부분은 무엇보다 자율성. 미술모델은 입장하는 순간부터 가운을 입고 나올때 까지가 하나의 퍼포먼스고, 애티튜드 유지가 그 퍼포먼스의 핵심이다. 가운은 가장 길고 부드러운걸로, 배경음악은 수업 종류에 따라 신중하게 미리 선곡, 스피커는 최고급으로. 음악이 갑자기 꺼질때도, 타이머가 말을 안 들어도 허둥대면 안된다. 침착해야 해, 손이 떨리는 건 막을 수 없어도 표정은 평온하게. 심지어 물도 우아하게 마셔야됨.

솔직히 몸매가 좋으면 다 씹어먹긴 한다. 모델의 기본 장비는 몸이니까. 근데 나는 몸매보단 성실성과 준비성으로 승부하는 타입이고, 이게 날 장수모델로 만든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만드는 화가쌤들은 몰라도 나는 대학교나 입시학원에 주로 나갔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 모델 일 하면서 성격 많이 고쳤다.

목표는 6,70대까지도 할머니 모델로 활동하는 것. 오늘도 주섬주섬 봇짐을 챙긴다..

(2022년 2월 25일)

전략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택시기사 같은 일회성 마주침 포함) 레즈비언 커밍아웃을 한다.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이성애자로 전제하고 건네는 스몰토크에는 거짓으로 답하지 않는다. 요새는 운전연수를 받고 있는데, 연수 강사님(40대 남성)이, 부모님이 서울에 계시는데 왜 자취하냐고 묻길래 “동거하느라 집 나왔다가 헤어지고 다시 못돌아갔어요.” 했더니 혼자서 납득하곤 “남자한테 상처받고 페미니스트가 된 거에요?” 라고 물었다.(페미니스트 커밍아웃은 만나고 1초만에 했음. 여자 운전자 욕하길래..) 그래서 저는 레즈비언이고, 남자는 싫어할 만큼의 관심도 기대도 없다고, 한국에서 두 성별이 서로 탓하면서 싸우는 건 사실 서로를 너무 원하기 때문이라고 나의 이론ㅋ을 설파했다. 강사님은 그저 혼란스러워 보였음ㅋㅋㅋㅋ 침묵속에 연수가 이어졌는데 오늘따라 코스 난이도가 상당했고.. 내가 “선생님 지금 제가 페미니스트라서 괴롭히려고 이 코스 도는거죠?” 라고 농을 쳤다. 둘다 빵터졌고 대화도 연수도 어찌어찌 잘 마무리하고 귀가. 애인은 한번보고 말 사이에 너무 TMI 아니냐고 하는데, 나는 이마트 캐셔 붙들고 커밍아웃 한 적도 있음. 암튼 걍 세상을 다 바꿀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만나는 사람한테는 성소수자가 이렇게 살고 있다고 태연하게 알리는 것이 내가 택한 실천의 방식임.

첨언하자면, 사랑하니까 싸우는 거다=싸우는 건 바뀔 거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라는 아이디어는 울 엄마의 한탄에서 얻었다: “난 니네아빠랑 말 섞고 싶지도 않아.”

(2021년 10월 29일)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2018년 10월 22일은 ‘오늘부터 1일’이라는 관용어에 부합하는 날은 아니다. 그 날은 상봉동 버스터미널 근처의 참치집에서 번개로 처음 만난 날이다. 함께 담배를 피러나와 둘이 있게 된 자리에서, 뭐하시는 분이냐고 묻는 내게 그녀는 나무를 인두로 태워 그린 반려동물 초상화들을 보여줬다. 나는 키우던 강아지 이야기를 하며 나도 하나 주문하고 싶다고 대답했는데, 집에 와 그녀가 알려준 인스타에 들어가 보니 그건 그냥 초상화가 아니라 유골 보관함이었다.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정정하지 않았던 모습이 생각나, 다음에 만날 때는 조금은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애프터가 오기도 전에 김치국을 마셨다는 말이다.

이틀 뒤 회기동에서 첫 데이트를 했고, 그날 밤 그녀의 집에 따라갔다. 짐짓 술에 취한 척 하며, 오래도록 고양이를 무서워 했다는 사실을 감추고, 고양이 엄청 좋아한다는, 애기들 보고 싶다는 개구라를 치며 쫓아들어간 집이었다. 침대는 기숙사 이층침대같이 좁았는데, 우리는 거기서 헤드윅의 로고처럼 겹쳐서 잤다.

다음 날도 출근인, 외박 계획이 없었던 평일이라 새벽같이 일어났다. 부스럭대며 스타킹을 신는데 그녀가 같이 일어났다. 신내동 종점에서 필운동 본가를 찍고 회사까지 데려다 줬던 그 아침을 그녀는 아직도 기적이라고 부른다.

일주일 정도였나, 그 이후엔 내내 나의 ‘당’(그 ‘밀당’ 맞음)이 이어졌다. 그녀가 목수라는 직업을 소개할 때 부터 나는 결혼을 마음먹었는데, 첫 섹스를 하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사귀자는 말을 못 들었으니 유교걸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어느 이자카야에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던진 내 구애에도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자존심이 확 상해 술집에서 나와 택시를 잡았다. 상봉에서 종로까지 가는 길은 내부순환로를 타는 게 가장 빠르다. ‘내부로 갈까요?’ 라고 묻는 기사의 말에 나는 ‘네’ 했다가 바로 ‘아니, 시내로 가주세요’ 라고 정정했다. 그녀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라고 연락하면 빠르게 차를 돌려 그녀에게 안길 수 있도록.. 그렇게 시내를 꽤나 오래 가다가.. 내가 먼저 전화를 했고.. 이것은 우리 관계의 패턴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10월 22일을 기념일로 정했다. 정확히는 10월 22일 저녁 9시 정도, 내가 언니를 처음 본 바로 그 순간이, 우리의 시작이라고.

(2021년 10월 24일)

2021 한국퀴어영화제 다큐멘터리 “모가나” GV의 일부

2021 한국퀴어영화제 중 다큐멘터리 “모가나” Q톡(GV)의 일부를 남겨둠.

“(모가나가 퀴어하다면 어떤 부분에서 그렇다고 생각하는지)우리 사회에서,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문명 사회에서 섹스를 남녀 사이에, 일대일 그것도 비슷한 연령과 어떤 표준 범위 내에 체중을 가진, 같은 인종 사이에, 이런 여러 가지 기준들이 있잖아요. ‘정상’이라고 부르는. 근데 모가나 같은 경우는 일단 그녀의 나이, 그리고 바디 사이즈가 플러스 사이즈라는 것, 그리고 중년 여성이 성적인 것에 굉장히 적극적이고 그걸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되게 퀴어한 것 같아요. 왜냐면 우리가 퀴어라는 단어를, 성소수자만을 가리키려고 쓰는 단어는 아니잖아요 원래는. 규범적이지 않고, 설명하기 어렵고 이런 것들을 퀴어하다고 불렀으니까. 어원 자체가. 그런 면에서 모가나도 되게 퀴어하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정상이라는 게 참 웃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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