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가장 잘 아는 두 여자”

어제 전경린 <천사는 여기 머문다> 북토크 다녀 왔다.

문학동네는 왜 전경린 작가를 자꾸 ‘연애소설 잘 쓰는 작가’로 네이밍 하는건지 심히 불만이고, 40명만 미리 뽑아서 하는 작가와의 대화에 참가하는 독자들은 왜 자기 연애상담 따위를 작가에게 늘어놓는지 모르겠다. 변영주감독님이 ‘라디오 상담실 같아요’라고 한 코멘트, 현장에서는 재치있고 웃음 나오는 발언처럼 소화됐지만 나는 뼈가 있는 말이라고 느꼈고.

동거녀, 이혼녀, 불륜녀..이런 네이밍을 전경린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라벨링하는 것, 그것은 독해를 위한 한 스텝이어야 하지 최종적 평가여서는 안되는데.. 자기가 결혼은 하기 싫고 애는 낳고 싶은데 어쩌면 좋냐는 질문을 왜 작가님한테 하고 앉았냐…..

내게 전경린 소설은 여성의 ‘연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역설적 자유’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소설집 중 ‘폭우에 떨어진 낙과같은 여자들’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일견 부정적 표현이지만 나는 그 낙과에 감정이입한다. 낙과처럼 땅에 떨어졌기에 자유로운 여자들, 가부장-자본주의에서 ‘팔리기 위해’ ‘상품’으로 자기를 자발적으로 위치시키는 탐스러운 과일이 되고자 하는 여자들이 아니라, 자신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래서 이미 자신은 특정한 트랙에서 벗어났다고 여기는, ‘그런’ 여자들이 누리는, 역설적 자유.

말하자면 뻔한 얘기다. 착한 여자는 천당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는. 그렇지만 뻔한 구절이 내 삶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알라딘에서 하는 작가와의 대화 신청 페이지에서, 신청 이유를 나는 이렇게 적었다. “전경린 작가님과 변영주 감독님은 내게 용기를 주는 분들이다”고. 대화 중 변감독님이 “나는 한 가지를 선택할 때 다른 것들에 대한 욕망은 사라진다”고 하신 것도 그렇고, 요즈음 내게 용기와 확신을 주는 구절들이다..

암튼 다음은 기억나는대로 끄적인 전경린 작가의 코멘트 들. 워딩은 정확하지 않고, 그냥 내가 재구성한 것이니 틀릴 수도 있음.

(전경린이 소설에서 연애를 주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지금 한국의 2-30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하게 다가오는게 연애인 것 같이 얘기되지만, 사실 한국사회에서 자유연애라는게 사회적으로 용인된 것은 불과 몇십년이 되지 않았지요. 아직도 어떤 나라에서는 가족이 허락하지 않는 연애를 했던 여성을 지구끝까지 쫓아가서 살해하는 일이 일어나고. 그런 의미에서 연애는 개인의 역량이 모두 발휘되는 장인 동시에, 사회가 허용하는 관계의(?) 범위, 그 상상력이 어디까지인지를 드러내는 장이기도 합니다.”

(한 독자가 <백합의 벼랑길>마지막 부분을 낭독한 후)
“그 부분은 저도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사람들은 슬픔이 내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기쁨이야말로 개인의 가장 은밀한 부분, 공유하기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맥도날드 멜랑콜리아>등에서 마산, 진해의 풍경이 세밀히 묘사되었다는 질문)
“변영주 감독님의 <화차>에도 마창진(?)이 풍경이 잘 드러나서 주민들이 영화를 보며 즐거워했다고 들었어요. 요 즈음 저는 한 작가가 어떤 지역에서 거주하고 생활할 때, 작품에서 그것이 드러나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2014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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